시편 21편

2023. 6. 20. 00:30성경읽기/시편(2023.01.18 ~ )

21편 왕이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이 시는 하나님이 다윗 왕으로 하여금 원수들에게서 승리하게 하시고(1, 5절)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일(2,4절)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기뻐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1-6, 13절). 이 시는 앞의 제왕시(20편)를 뒤잇는 또 다른 제왕시로서 20편의 다윗 왕의 승전을 바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20편이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통해 다윗에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 시는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그분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
ref. D.A.카슨 외,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개역개정), 복있는사람, ePub

여호와여, 주님의 크신 힘 때문에 왕이 기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승리 때문에 그가 매우 즐거워합니다. 
(시21:1, 쉬운성경)
The king rejoices in your strength, LORD. How great is his joy in the victories you give! 
(Psalms 21:1, NIV)

주께서 왕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고
환한 얼굴빛으로 기쁨을 선사하십니다.
그러니 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좋은 분을 떠나지 않을밖에요.
(시21:6-7, 메시지)
ref. blessedpub(복있는사람), Monday Gospel(2023.06.19), Instagram
; 우연히 보았던 글인데 생각이 났다.  하나님은 넘치는 기쁨을 우리에게 항상 주시지. 우린 그저 누리면 되고!

 

 

(묵상)

오늘도 내가 생각한 계획과는 너무나 다른 하루를 보냈다. 생각했던 일의 진척이 전혀 없었고 매주 기대하는 저녁 시간을 위해 일도 마무리 하지 않고 퇴근했는데, 잠깐 눈을 감은 게 시간까지 놓치고... 저녁에 부모님이 보는 드라마를 우연히 시청했는데 그게 아직도 마음을 어렵게 한다. 또 다른 고민들도 계속해서 넝쿨처럼 나를 옥죄고 있기도 하다. 생각할 것들이 많고 저지를 일들을 어떻게 회수해야 하는데.. 남은 기간들이 너무.. (휴우)

그런 가운데 말씀이 너무 읽고 싶어 오늘은 작정하고 책을 폈다. 힘들 때 찾아가던 세상적인 방법이 있는데 최근에 지인 조문으로 멀리 운전을 하는 일이 있어서... 그때 깨달은 게 '좋은 일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쓸데없이 늦잠 자지 말자.'는 이상한 논리가 겹치면서 관련 자료들을 다 삭제 폐기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힘들어서 다시 마음이 문득 들 때, 당시 피곤함을 상기한다. (어떻게 습관을 고치나 했는데.. 담배 생각은 브이를 만들 때 생각이 나니 반대로 주먹을 쥐어버리니 생각이 사라졌다. 어떻게든 기도하면 지혜를 주시든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방향을 돌이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신다.)

지금 날이 더운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선풍기가 없어서 일단 가만히 앉아 있는다.

이러한 나의 상황과 반대로 21편 제목은 '왕에게 승리를 주심에 감사'하는 찬양을 올린다. 
1절이 오늘 나에게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고통'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기쁨'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못했던 거 같다. '고통'은 나 같은 경우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보니 중간 중간 가슴 통증이 온다. 그래서 요즘 '고통의 문제'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회사에 선생님 이야기도 듣고, 주변에 지나가는 글들을 읽으면- 나는 어린 아이의 아픔과 어른이 되어 느끼는 아픔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고통의 수치를 잴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마음이 아프다는 데 누가 그 정도로 뭐가 힘들어- 라고 말할건가. 정말 죽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은 것 중 하나가 가슴 통증인거 같다. 그러니 제발 힘들다고 할 때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할 필요도 어떻게든 위로하려고 달려들지 않아도 된다. 기도하며 어떻게 그들이 주님 안에서 평안할 수 있을지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으면 된다. 

그렇다면 '기쁨'은 무엇일까? 내가 '진돌'작가님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너어어어무 재미 있다. 그리고 최근에 올린 숏츠에서 히디님(진돌작가님의 사모님)과 사생대회?를 하는데 '희노애락'을 주제로 서로를 그려주는데-
히디님은 '락樂'에서 소리를 지를까봐 입틀막하고 눈에서 눈물이 난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최근에 생각하면 나도 생각하지 못한 배려를 선물 받았을 때 너무 감사함에 가슴에 두근두근이...=/////=)
기쁜데 왜 눈물이 날까? 의학적 접근으로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호르몬이 눈물샘도 자극하게 되어 눈물이 생성된다고 한다 (구글링 첫 글을 읽고 가져왔다). 최근에 우리는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그와 관련 책들과 프로그램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걸 금기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행복하길 바래'를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사랑해'를 많이 하면 그 의미가 희석된다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데 신기한 게 문득 닳지 않는 기쁨도 있구나를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선물 받으면 기쁘지만 곧 다른 더 좋은 것에 눈이 돌아가고- 이 시험만 통과하면!!!하고 통과의 기쁨을 누리지만 그 후 또 다른 시험(인생의 시험이든 진짜 다른 시험이든)들이 기다리고 있고- 비슷한 맥락으로 이 문제만 해결해주세요 주님!! 외치고 응답 받아 행복하면 곧 다른 문제가 나를 기다린다 (아 주님 잠만요). 쓸수록 말이 길어지는데...
닳지 않는 기쁨은 그 기쁨을 주는 '대상'이 변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바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쁨이다 (하나님 덕분에 내가 살아감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

여호와여, 주님의 크신 힘 때문에 왕이 기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승리 때문에 그가 매우 즐거워합니다. 

우리의 기쁨이 그저 나의 잘난, 나의 노력, 나의 명예, 나의 부, 나의 권력으로 인해 오는 거라면,
얼마나 불안할까. 그 노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명예-부-권력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문제들을 일부러 부대끼며 그 승리들에 도취되지 않을까. (이건 내가 뭐라 말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렇다고 워딩을 단순하게 수정할 마음은 없으니 우선....ㅈㅅ)

그런데 이 모든 기쁨이 주님께서 주신 거라면? 우리는 변치 않는 기쁨 가운데 놓여진다. 우리의 모든 결론은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잘됨도 주님 덕분이고, 우리의 슬픔도 주님 덕분이고 (이 부분은 고통의 문제를 읽고 다시 정리해보자), 우리의 갈망도 주님 덕분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주께하듯 우리의 삶에 집중하고 모든 결론은 주님께 맡겨드리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라 이 부분을 정말 진실되게 가슴에 우려나서 쓸 정도에 연식과 경험과 하나님과의 만남이^^;;; 많지가 않아서 여기서 묵상을 마무리한다.

하나님은 나를 고통에만 두시는 게 아니고 우리를 훈련만 시키는 분도 아니다. C.S.루이스랑 필립 얀시 아저씨가 개 키우는 것을 비유로 종종 사용하시는데-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와 닿는 유비/비유 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강아지를 훈련할 때도 있지만 그냥 존재 만으로 이쁘고 사랑스럽지 않는가? 하나님은 사실 우리가 수학 1등을 하고, 매출을 1.5배 높이고, Nature지 같은 유명한 학술지에 이름을 올리고, 어떠한 대상을 받아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자녀라고 말씀 해주셨고, 우리는 그로 인해 기쁠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하는 마음에 '주께하듯' 일을 하게 되는 거 같다.)

다윗의 시를 보며 다시 고백한다. '주님께서 주신 승리 때문에 00이가 매우 기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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