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2~8] 새벽말씀 (2025.11.05)

2025. 11. 5. 08:36예배

[막9:2-8]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기도)
우리 삶의 자리로 믿음이 확장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랑의 영역이 넓어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일터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저변이 넓어지게 하사 믿음이 삶의 전 영역으로 퍼져 깊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의 신원을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말씀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날마다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며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원로목사님의 비전 선교와 군선교 사명을 감당하실 때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하시고, 우리 원로목사님의 건강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선교사님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선교지마다 복음이 살아 역사하는 은혜가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아가페 국제 교정 학술대회를 주님 손에 맡겨 드립니다. 행사의 모든 일정 가운데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새벽 예배 가운데 주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실 줄 믿사옵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우리의 믿음이) 교회에 머무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사랑의 영역이 넓어지고, 일터에서 저변이 넓어질 때 우리의 믿음이 흘러가고 성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청년일 때 가장 큰 고민은, 교회에서 확실히 은혜를 받았지만 그 믿음이 삶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며 섬김과 사역의 자리에서 은혜를 누렸지만, 교회 문을 나서면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교회에서의 믿음이 삶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까?
삶과 신앙은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삶에서도 이어지고, 삶의 기쁨과 성공이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 보완될 때 믿음은 깊어집니다.
신앙과 삶 중 한쪽이라도 무너지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영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체험이 단순한 경험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 은혜를 가지고 삶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삶과 신앙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어떤 능력이 되겠습니까?
삶의 자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드러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삶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 때, 우리의 삶 속 골리앗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능력을 주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용모가 변하신, ‘변화산 사건’을 통해 신앙생활의 은혜와 영적 체험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많은 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만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왜 산에 올라가셨을까요? 본문은 단지 “높은 산”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묵상하며 생각했습니다. 왜 높은 산이었을까요?
높은 산은 우리가 스스로 오를 수 없는 곳입니다. 누군가의 인도 없이는 결코 오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그 산은,
주님과 동행할 때에만 오를 수 있는 산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신비한 체험과 능력을 얻지만,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동행할 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왜 높은 산일까요?
첫째, 주님과 함께할 때에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모든 제자를 데리고 가지 않으셨습니다. 세 사람만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훈련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훈련받아야 합니다.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해 순종하며 살아가면, 믿음은 깊어지고 삶은 승리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산을 오를 체력과 호흡, 그리고 힘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신비한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은혜를 소유하기보다 그 자리에 계속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는 머물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초막을 짓고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이 필요한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은혜가 흘러가야 합니다.
은혜가 머물러 있으면 공동체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 은혜가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은혜가 변화산에 머무르지 않고 삶 속으로 흘러내릴 때 능력이 임합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로 끝나지 말고 삶 속에서도 흘러넘치게 하십시오. 그 은혜가 주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산에 오르셨지만 “(9절) 그들이 산에서 내려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올라가지만, 충만한 은혜를 받은 뒤에는 삶의 자리로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체험을 주신 이유는 산 위의 비밀을 산 아래의 현실 속에서 실천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승리합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살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그것을 ‘흐름대로 사는 인생’이라 합니다.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흐름과 타이밍을 탄 경우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다릅니다. 정으로 쪼이고 깎이고 때로는 아프지만, 결국 주인의 작품이 됩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세상에 살아도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어디서 누립니까?
교회에서 누립니다.
교회에서 누린 은혜를 삶의 자리로 이어가고 내 것으로 만들어 흘려보낼 때, 믿음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삶 속에서도 깊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8절까지만 읽었지만, 사실은 29절까지가 하나의 흐름입니다. 산 위에서는 제자들이 신비한 체험을 하지만, 산 아래에서는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합니다. 은혜와 현실이 교차합니다.
산 위의 체험은 화려하지만,  산 아래의 현실은 고달프고 무력합니다. 거품을 물고 고통받는 아이, 그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절망 — 그것이 산 아래의 현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 두 가지가 공존합니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았지만, 삶 속에서 그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은혜는 거기서 끝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삶 속에서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주님의 뜻이며 믿음이 깊어지는 시작입니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와 능력이 삶 속으로 이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변화산의 은혜와 능력이 일상 속에서도 나타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고, 믿음이 깊은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