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아(렘)1:4-10] 20251103 새벽예배

2025. 11. 3. 09:09예배

[렘1:4-10]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 주시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 날씨가 차가워지고 이제는 겨울이 오는 것처럼 이 세상을 섭리하고 계신 주님의 손길을 알게 하시고 경험케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과 같이 우리의 삶 가운데도 주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우리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넘어지는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시며 주님의 은혜로 채워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세우신 명성 교회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담임 목사님을 늘 성령 충만하게 하시어 말씀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으로 더하여 주시옵소서. 원로 목사님을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며 하시는 비전 사역과 군 선교 사역을 통하여 무너진 교회와 가정, 또 군이 되살아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 가운데 전해지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주님을 경외하며 이 나라를 화합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며,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잘 이루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감사로 올려드린 추수 감사 주일과 임직식을 잘 지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삶의 받지 못한 것으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것에 감사할 때 더 크게 채우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우리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준비하고 있는 아가페 국제 교정 학술대회 가운데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준비하는 손길 가운데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전하는 사람은 감추어 주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회복되는 귀한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주님의 전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은혜와 보호하심이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이 예레미아의 말씀을 통해서 저희는 우리가 해야 할 것과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 두 가지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깊어질 때 진짜가 된다. 이 제하의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깊어져야 진짜가 되는데 이 깊어지려면 넓어져야 한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반경을 넓히고 또 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그 삶의 영역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반경을 넓히고 신앙으로 더 깊어져서 이 형제 사랑에서 시작되어서 이웃 사랑까지 나아가서 주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성도님들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신대원을 이제 가게 되면요 가장 많이 이제 이야기하고 듣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신대원이니까 성경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왜 내가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모든 수업에 가면 모든 수업 첫 시간에는 그 시간이에요. 이렇게 다섯 여섯 명씩 둘러 앉아서 왜 신대원에 왔는지를 서로 얘기하고 나눠보라. 또 무슨 모임에 가면 다 그겁니다. 신대원에 왔으니까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한번 이야기해 보고 그 은혜를 나눠 보라. 그래서 정말 한 학기 동안에 한 50번 정도는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그래서 이제 듣는 사람은 다 한 번인데 말하는 저는 이제 입에 베이게 되는 거죠. 이게 이제 나중에는 스토리화 되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아 저는 거절하고 거절하고 사양하고 사양하고 그렇게 못한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순종해서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이 과연 이 신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목회자로 부르신 사람들에게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님들께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이제 이렇게 날씨가 쌀쌀해지고 이렇게 연말이 다가가면 이제 내년 봉사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내년에는 좀 내려놓아야겠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만약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순종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 오늘 이 성경 본문에서 나오는 예레미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면 이 사람은 바로 순종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예레미아도 그렇지만 모세도 이렇게 이야기하죠. 하나님 나는 말을 못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고 기드온은 하나님 저는 약한 자입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이사야는요, 이 하나님을 마주하고 화로다 나의 이제 죽게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아직 말씀도 안 하셨는데 이제 나 죽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런 선지자들의 모습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예레미아도 이렇게 이야기하죠. 주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레미아는 아직 어리고 미숙했습니다. 어리고 미숙한 사람인데 이때 당시의 시대 상황은요, 이 남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인 상황입니다. 이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이제 쳐 들어와서 망하기 직전의 상황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은 이제 조선이 일제의 침략을 받아서 이제 멸망하기 직전인 상황입니다. 자 그래서 정치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다 피폐해지고 무너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부르셨어요. 그런데 이 예레미아가 선포해야 되는 메시지가 어떤 건지 아시죠? 우리는 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해야 됩니다. 멸망을 당해서 포로 살이를 70년을 하게 되는데 70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겁니다. 그때 우리를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겁니다. 이 메시지를 전해야 돼요. 이 메시지 전하면 생각해 보세요. 우리 나라의 그 시대상에서 이 메시지를 전하면 바로 매국노 되는 거죠. 얼마나 미움을 받겠습니까?
자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를 부르셨어요. 그래서 이 부르심은요 두려움으로 시작된 이 부르심이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또 그 두려움의 자리로 나아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사람을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두려운 사람을 붙잡아서 강하게 만드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예레미아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요,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말씀에 붙들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내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성별하였다 구별하였다는 것이죠. 요 말은, 우리가 거룩이라고 표현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셨다. 예레미아를 거룩하게 성별하셨고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은요 예레미아의 능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자 그의 인생은 실수로 만들어진 어쩌다가 우연히 선지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미 준비되고 구별되고 성별되었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무 두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슬프도 소이다. 주 여호와요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는 아이다. 이 고백 안에는요 두 가지 감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요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에요. 저 그거 감당 못해요. 저 정말 저거 안 됩니다. 스스로를 부적합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요 하나님의 일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엄청난 일을 감당해야 하고 엄청난 미움을 받아야 됩니다. 자 그런 일 가운데 너무 두렵고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내가 이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사명 앞에서 늘 두렵고 떨려 합니다.
자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아를요 꾸짖지 않으세요 꾸짖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그의 마음을 붙드시고 도전하시는 이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꼭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말씀을 이제 보면요 하나님의 첫 대답은요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명령이었어요.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 더 이상 너는 너를 아이라 하지 말라. 내가 너를 보내는 곳에 가며 내가 내게 명하는 말을 다 말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의 말에 아 그거 내가 그러면 네 약 좀 내가 없애줄게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그 능력 내가 채워줄게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요 능력으로 연소한 예레미아에게 갑자기 많은 능력을 주시거나 갑자기 경험이 많아져서 시대를 빠르게 흘러가게 하는 이런 하나님의 기적을 선보이시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약함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고 이 말씀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아는요 나는 아이다라고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냐면 너는 내가 보낸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에레미아의 정체성을 바꿔주십니다. 스스로를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곳에 가는 사람으로 이 정체성을 새로운 정체성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아에게 능력을 주시기보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렵고 떨려 하는 사람에서 말씀의 전달자가 되게 하셨고요.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이 아닌 말씀의 통로가 되라고 예레미아에게 도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지우는 힘은 우리가 용기를 내는 이 심리적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권위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을 지우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우리 두려운 자리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예레미아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에게 능력을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자 우리가 소명을 받게 되면 저도 이제 이런 말씀을 많이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시면 감당할 능력도 주십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레미아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는요 능력이 먼저가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동행의 약속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어요. 이 능력이 필요하지 않고 다른 능력이 필요한 경우면 어떻게 됩니까? 그 능력이 별로 필요가 없어요. 자 그런데 반대로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을 공급하실 수 있고 우리에게 무한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신다면 내가 필요한 그때 그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시고 또 우리와 함께하신 우리의 삶을 돌보시는 그 하나님이 항상 나를 내 옆에 계시는데 어떤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동행의 축복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이들에게 늘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도 그랬고 여호수아에게도 그랬고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를 통해서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라고 말씀하셨고 모세에게는 내가 너와 함께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여호수아에게는 내가 함께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겠다는 동행의 약속에 이어서 예레미아 입술에 손을 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내 입에 내 말을 주었노라.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예레미아의 입과 마음에 심겨진 순간 그 두려움의 현실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아의 입과 입술에 심겨진 순간 그 중심은 말씀으로 붙들린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예레미아가 변한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능력이 아닌 동행에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예레미아처럼 두려워 했습니다. 우리가 고린도 전서 2장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이 떨었노라. 우리가 여태까지 많은 설교들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으로 바울은 이 몸에 약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면 저게 어떻게 하나님의 사자야 저게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할 정도로 아픈 곳이 많았어요. 그래서 항상 이렇게 사도의 이 직분에 대한 도전을 받아야 했고요. 심지어 이 고린도에서는 복음을 전할 때 외로움과 공포 가운데 있었습니다. 생계까지도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환상 중에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마디가 바로 바울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이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던 이 고린도에서의 삶을 1년 6개월간 버티게 되는 이 바울의 삶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황이 바울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을 붙들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부르심도 똑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두려움을 덮고 사람을 세우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더니 아 나는 아이라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던 이 예레미아가 어떻게 되냐면요, 제가 20장을 한번 읽어드릴게요. 20장의 7절에서 9절 내용인데 하나님의 이 말씀을 받아서 이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죠. 그다음에 일들이에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심으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옥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 이 남유다 백성들에게 우리는 멸망당할 것이고 바벨론에게 순종해야 됩니다. 항복해야 됩니다. 그래야 70년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걸 얘기를 했더니 이 매국노 하면서 얼마나 욕했겠습니까? 침도 뱉었겠죠 이 사람은요 정말 이렇게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어떨까요? 아 나 이제 안 해.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의 소명의 자리로 나아가면 그거 꽃길 같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하나님께서 다 도와주셔서 모든 것이 만사형통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자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우리 소명의 자리 가운데는 이런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 자 그런데 말씀이 여호수아를 붙들었더니 구절에 뭐라고 고백을 하냐면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나 이제 하나님 말씀 안 전할래요. 이렇게 생각을 하면- 내 마음에 불 붙는 것 같아서 도저히 내가 그걸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내가 전합니다 하면서 아이와 같아서 나는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했던 예레미아가요 하나님의 소명의 자리로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소명의 자리로 나아가 말씀의 전달자가 되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제가 아까 이 동행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가 이 성경을 보면 저희 성경은 말라기가 마지막이잖아요. 시대 순으로 편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약 성경만 있는데 이 구약 성경의 마지막은 역대하입니다. 역대하 마지막에 보면 바벨론의 왕이 이스라엘 유다 백성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포에서 해방시켜주는 걸로 끝나요.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마태복음이 가장 처음에 있으니까 마태복음으로 설명을 드리면 마태복음에서 천사가 처음에 찾아와서 이 마리아에게 하는 말이 임마누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임마누엘의 뜻이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라는 말씀입니다. 자 그러니까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동행을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자 그리고 1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왕국 위에 세워 내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무너뜨리고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요 예레미아에게 파괴와 건설의 사명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자 그런데 이 사람은 이 능력이 없어요. 모든 것을 파괴하고 건설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예레미아 안엔 없는데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주시고요 그 능력을 주셔서 이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겨낼 만한 시험만을 주시겠다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순종하면서 나아가면 이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도 환경도 허락하시겠다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우리 보고 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도구를 찾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하는 필요한 것은요 말씀에 붙들리는 것이고요. 그리고 해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길에 하나님의 말씀에.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님들께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스라엘에는요 네게브 사막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보통 성경에도 네겝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성경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네게브 이렇게 지역 해서 유다 땅 밑에 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땅 오른쪽에 있어요. 이 네게브라고 나오면 보통 그냥 제일 남쪽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이 남쪽은 사막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사막이니까 아무것도 없잖아요. 사막이니까 그냥 모래 벌판입니다. 자 그런데 여름에 이렇게 사막이에요. 그런데 겨울이 와서 비가 한 차례 내리면요 이 온 사막이 들꽃으로 변한다고 해요. 저도 이거를 이번에 말씀 준비하면서 처음 봐가지고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관광청에서 이거를 이제 홍보를 하는 내용이더라고요. 이 사람들은 이 광경을 하나님의 그림이라고 부르는데 이 네게브 사막에 비가 한 차례 오게 되면요 붉은 양귀비도 노란 해바라기도 자주색 루핀도 자라게 되어서 이 꽃들로 가득한 광경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자 이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사막과 같은 우리의 삶 가운데 이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우리에게 임하면 이 꽃을 피우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무슨 저런 사막에서 꽃이 나겠어 하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이 비가 내리기를 그 회복이 일어나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사막에 꽃을 피우는 분 우리 사막과 같은 삶 속에 빈들과 같은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의 비를 내리셔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도 삶 가운데도 꽃 피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고 하나님의 환경도 이제 허락하실 것이지만요 예레미아는 여전히 약했고 현실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자 그런데 한 가지가 달라졌어요. 예레미아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요 두려움에 붙잡혔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아는 두려워하던 청년이었지만 이 말씀의 단비로 세워졌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소명은요 예레미아처럼 정말 민족을 향한 국가를 향한 거대한 소명일 수도 있고 또 아니면 우리 옆에 앉은 이웃들을 알뜰 살뜰이 챙기고 또 그들에게 따뜻한 말로 위로의 말로 권면하는 이런 아주 우리가 작다고 생각하는 이런 소명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예레미아가 감당했던 이 소명도 우리에게 주신 아주 작다고 생각되는 이 소명도 같은 소명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우리의 성실함으로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의 약함이 사명을 이루지 못할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 약함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입니다. 두려움이 나를 잡고 흔들 때 말씀은 나를 붙듭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말씀의 무게가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아는 떠는 청년에서 선지자가 되었고, 바울은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던 사도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너를 보낸 이는 내가 아니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약속이 우리 부르심의 근거이며 믿음의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요즘 즐겨 부르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오 나의 실패는 나의 간증이오 나의 아픔은 나의 영광이니 그 부르심 따라 내가 걸어갑니다. 결국에는 나의 약함을 자랑으로 만드시고 나의 실패를 나의 간증이 되게 하시며 나의 아픔을 영광으로 바꿔주실 또 나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주님의 부르심 중에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우리의 삶을 내어드리는 우리 사랑하는 명성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