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3. 05:29ㆍ예배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3:10-12)
10 The ax is already at the root of the trees, and every tree that does not produce good fruit will be cut down and thrown into the fire.
11 "I baptize you with water for repentance. But after me comes one who is more powerful than I,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carry.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fire.
12 His winnowing fork is in his hand, and he will clear his threshing floor, gathering his wheat into the barn and burning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
(Matthew 3:10-12, NIV)
(아멘)
오늘 쭉정이의 회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외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전에 어렸을 때는 시장에 가면 뻥이요 하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뻥이요!' 하면 팍 터져 그게 그렇게 무서워 보일 수 없었는데 그분은 이제 뻥튀기하시는 분이시죠. 요즘에도 세탁하시는 분들 중에서 다니시면서 '세~탁'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다 자기의 직업을 외치죠. 여러분 그러면 선지자들은 무엇을 외쳤을까요? 선지자들은 회개를 외쳤습니다. 회개를 외치는 사람들이 선지자였고 그래서 세례 요한이 선지자인 것입니다. 이사야가 회개를 외쳤고 예레미아가 회개를 외쳤고 에스겔이 하박국이, 심지어는 요나조차도 반나절밖에 돌지 않았지만 그가 회개를 외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례 요한은 분명한 선지자였고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지자였습니다. 세레 요한은 회개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회개를 외치고 다녔고 특별히 잘 믿는다고 하는 바로 그 유대인들, 예루살렘의 중심지에 살아가는 그 능력 있고 권세 있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정말로 회개를 해야 된다!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 만드실 수 있다. 너희들 기득권과 힘 가지고 마치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그러지 말고 나와서 회개하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죄인에게 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 오직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 물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세례는 회개하는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물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바로 그런 회개에 대한 선포인데 여기에 회개에 대한 두 가지 선포가 나옵니다. 첫째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찢겨 불에 태워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고요. 두 번째는 쭉정이들이 반드시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구별하여서 불에 태우실 것이다라고 하죠. 이 쭉정이는 시편 1편에 나오는 바람에 나는 겨와 똑같은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다음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은 그분의 신을 들기도 어려운 너무나 귀한 분이라고 높여 드리면서 자신을 낮추죠. 이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세례 요한의 어떤 영성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의 차이입니다. 이건 넘어설 수 없는 그런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성령의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성령으로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고 그 불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눠서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여러분 제가 타작마당에 대해서 말씀드린 거 기억하십니까? 인류 최초의 예배 장소가 타작마당이라고 말씀드렸죠. 타작마당 그리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나중에 바로 예루살렘의 성전의 그 바닥이 되면서 이 타작마당은, 오늘 예수님께서 이 타작마당에서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은 우리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신다는 말씀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좀 이따 강조해서 말씀드리겠지만 우리를 알곡으로 만드는 것이 물론 다양합니다. 뭐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알곡이 될 수 있지만 오늘 세례 요한이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는 회개가 있는 사람이 알곡이 되어 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높은 자리 나 교회 앞에서 일한다고 천국- 알곡이 되는 게 아니라 분명히 예수님께서 그것을 구별할 때 우리에게 회개와 회개의 열매가 있느냐를 보신다는 거죠.
여러분 이렇게 무서운 말씀을 지금 던지고 있는 것은 특별히 회개에 대해서 말하면서 뭐 회개 안 하면 후회할 거야 뭐 이 정도 아니고 찢어서 다 찢는다니 뭐예요 이 나무를 벤다는 말 아닙니까? 나무를 완전히 그냥 확 찢어서 베워서 불에다 던져버릴 것이고 쭉정이는 다 태워버릴 것이고 굉장히 무서운 말씀이 나오고 있는데.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당시에 회개하는 것 같았지만 그 회개가 사실은 참된 회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회개의 모양만 갖고 있었을 뿐이라는 거죠. 재를 쓰고 막 '주여 주여' 그렇게 외쳤겠지만 이게 전부다 다 모양만 있는 회개였고 열매가 없는 참된 회개가 아니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제가 몇 번이나 강조해서 드린 말씀이 있는데 호세아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6장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이 이게 너무 아름다운 말씀인데 바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회개에 대한 아주 얕은 말씀입니다. 이게 호세아가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야 회개하면 다 낫게 하셔 회개하면 좋아' 그런 가벼운 회개는 회개를 알고 악용하는 회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런 회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세례 요한이 지금 두 개의 회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개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그냥 단순히 후회하는 감정 '아 내가 안 그럴걸 내가 교인이 그러면 안 되는데 목사가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버리는 것이며. 제가 주일날 말씀드렸죠? 버리는 것이 있어야 하고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그게 열매인 겁니다.
변화가 없는 똑같은 자리에서. 여러분 똑같은 자리에 있어도 정말 변하고 싶은데 다시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그 연약함의 똑같은 자리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죠. 그러나 하나님을 악용하고 똑같은 죄를 범죄를 계속 저지르면서 '야 회개만 하면 괜찮아'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열매라는 겁니다.
우리가 만약에 메마른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길과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우린 더 이상 메마른 땅이 아니라 주님의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됩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메마른 땅에서 주님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돌이킴 아니겠습니까? 이게 회개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열매 없는 회개, 입만 살아 있는 회개, 뭐 재만 많이 뿌리는 회개 이거 다 찢어서 주님께서 다 불에 던져버릴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두 번째 회개는 회개가 우리를 알곡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알곡 아닙니까?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이 알곡이죠.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이 시편의 말씀처럼 성령의 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 회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알곡이 되어 가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쭉정이가 되어서 주님의 심판의 불에 태워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은혜의 예수님- 뭐든지 다 사랑해 주시고,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신 보호 해 주시고, 사마리아 여인 다 사랑해 주시는 은혜의 예수님이시지만 동시에 예수님은 심판의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그 키를 누가 들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들고 계신 거예요.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키를 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우리를 그 위에 놓고 성령의 바람에 까불리시는 거예요. 탁 던지면 그때 쭉정이는 탁 날아가서 그거 나중에 빗자루로 쓱쓱 모아서 불에다 쫙 태우면 한 방에 쫙 다 태워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겁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할 수밖에 없는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구별하시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할 수 없는 게 이 구별입니다. 예수님만이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합니다. 저도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 못합니다. 제가 뭐 대단한 어떤 영역이 있다고 보면서 저 사람은 쭉정이고 저 사람은 알곡이고 저도 틀릴 수 있고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알곡 됨과 쭉정이 됨을 구별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무리 잘 나가고 아무리 아닌 척하고 살아도 결국 심판의 자리에서 누군가는 알곡이 되는 것이고 누군가는 쭉정이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심판대에 서서 성령의 바람을 확 불러일으키실 때 결국은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실 살아가다 보면 아픔과 괴로움과 고통과 고난이 우리를 구별시킬 때가 많지 않습니까? 전 그런 면에서는 고난도 성령의 바람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난이 있을 때 누가 정말 예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가 구별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 고난도 성령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바람이라는 것이 어떤 뜨거운 바람, 막 오순절 바람처럼 확 불면서 우리를 뜨겁게 하고 막 방언하게 하고 이런 바람도 있지만 우리를 심판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가벼운 우리를 날려버리는 바람도 그 고난의 바람 어려움의 바람을 통해서 또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제일 먼저는 가벼운 게 떨어져 나갑니다. 여러분 늘 가벼움을 경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가벼움과 무거움에 바로 회개라고 하는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된다는 거죠. 그게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커피를 좋은 걸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냥 아예 원두를 저도 이제 볶아서 제가 그냥 먹었어요. 근데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잘 지키기만 하면 되는데요. 맨 마지막 작업이 뭐냐 하면- 뜨거운 볶은 콩을 베란다에서 이렇게 망 있는 체에다가 올린 다음에 선풍기를 틀어놓습니다. 빨리 식혀야 되거든요. 온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이게 계속 익어가기 때문에 시켜야 되는데 그러면 그때 쭉정이가 여러분 커피콩도 이 안에 커피를 감싸고 있는 껍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익히면은 이걸 많이 볶으면은 커피가 그 벗겨져요. 그게 그걸 체프(chaff)라고 그러는데 그게 이제 쭉정이고 겨입니다.
바람 불면요 너무 쉽게 날아갑니다. 얼마나 차이가 큰지 모릅니다. 쭉정이와 알곡이 애매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거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쭉정이는 너무 쉽게 날아갑니다. 바람 탁 불면 선풍기 키면 쭉정이들이 쫙 날아갑니다. 저 하늘 높이. 그 하늘 높이 쫙 뉴저지의 그 하늘 높이 쫙 날아갔습니다. 수많은 쭉정이들이 제가 킨 선풍기에 다 날아갔습니다.
여러분 가벼우면 날아갑니다. 회개는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우리의 무게를 늘리는 방법은 주님 앞에 무거운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속에 회개가 진실된 회개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만 아시면 여러분 제가 이거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데 은혜만 아시는 분들은 회개의 무게를 반드시 갖추셔야 합니다. 저도 은혜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늘 은혜 얘기하잖아요. 이번 주 주일 전 설교도 은혜받는 사람들 공통점이 은혜잖아요, 은혜.
은혜가 귀한데 회개의 선포가 없는 은혜는 값싼 은혜가 됩니다. 서구 교회가 가벼워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만 강조하다가 회개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목사들이 불편한 회개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 죄인들인데 회개 말하면 사람들 공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 안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다 보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은 거예요. 뭐 아무리 밖에서 무슨 삶을 살아도 예배만 오면 괜찮은 거예요. 여러분 회개의 열매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는 잘 붙어 있지 않으면 떨어집니다. 바람이 불 때 잘 붙어 있지 않던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지난번에 한 번 여러분께 말씀드렸던 자전거 도둑이라고 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일하는 아이가 서울에 큰 바람이 부는데 간판이 뚝 떨어지면서 지나가는 아가씨 머리에 맞아서 피가 막 줄줄 흐르고. 자기가 주인의 자전거를 타고 심부름을 갔는데 자전거를 세워놨는데 바람에 자전거가 쓰러지면서 옆에 있는 차를 긁습니다. 그러면서 막 도망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이제 자전거 도둑이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여기에 바람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 모든 가벼운 것들과 모든 잘 붙어 있지 않던 것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여러분 주님께 붙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하나님께 잘 붙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강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 불어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 가까이 나가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지 마시고 주님께 바짝 붙어 있으시고 교회를 떠나지 마시고 예배를 떠나지 마시고.
여러분 팬데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수많은 교회가 팬데믹을 통해서 많은 성도들을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바람이 불면- 그 바람 또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다시는 안 오길 바라지만 누가 압니까? 어떠한 형태의 어떠한 바람이 또 불지 우리는 모르는데. 여러분 그때, 다시는 우리 교회가 성도를 잃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면 무거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가 우리 교회를 알곡 되게 하고 주님께 가까이 붙어 있게 하는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 주에도 주님과 가까이하시고 회개를 통해서 무거워지시고 또 주님 바짝 붙어 있는 은혜가 있는 그런 한 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새벽을 깨우게 하시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피곤하지만 졸음을 이겨내며 주님께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아 주시고 우리를 알곡 되게 하시며 열매 맺는 나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중에 나중에... 쭉정이처럼 날아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하나님 우리 안을 채워주시고 진실된 회개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오며 회개의 열매가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 더 가까이 붙는 귀한 절기가 되게 하시며 회개의 시간이 되게 하시며 우리 모두 영적으로 알곡이 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절 연합 집회 잘 준비하게 하시고 우리의 부활절 낮 예배도 잘 준비하게 하셔서 오직 하나님께서 큰 영광 받으시는 귀한 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대심방 중에 하나님 모든 심방받는 가정마다 주의 평안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고 우리 교구장 목사님들과 신방 대원들 한 분 한 분 꼭 붙잡아 주셔서 하나님 심방에 크신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명성 교회에 주님 사랑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기도의 줄을 놓지 않는 교회 되게 하시며, 선교에 힘쓰며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의 한없는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고, 총선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시오며, 좋은 일꾼들이 뽑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도 예배를 섬기는 주님의 귀한 종들을 일일이 기억하여 주셔서 안내하시고 봉사하시고 새벽 예배 위원회로 수고하는 주의 종들과 오늘 특별히 기도하신 집사님의 기도를 기뻐 받아 주시오며 한없는 은혜와 긍휼을 넉넉히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도 우리 성도들 가운데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아뢸 때 하나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오며 찾는 자들과 부르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과 함께하여 주시며 특별히 사랑하시는 원로 목사님 주의 장중에 붙잡아 주시옵고, 능력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며 신원을 강건하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오늘도 승리하는 한 주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주의 성령이 함께 하여 주시오며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오며, 하나님 바람 불 때도 주님께 붙어 있는 주의 능력의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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