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요) 21:17] 늦지 않았다. (It's never too late) 새벽말씀 20251104

2025. 11. 4. 09:30예배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늦지 않았다. (It's never too late)

여러분 아픈 다음에 고치는 게 쉽겠습니까 아니면 아프기 전에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프기 전에 조심하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저도 입에 늘 뭐가 좀 나고 그래서 아픈데- 원로 목사님도 저도 이제 똑같은.. 그런 약간 피곤하고 그러면 입에 뭐가 납니다. 근데 이게 비타민을 먹으면 잘 안 나거든요. 꾸준히 비타민을 먹으면 잘 안 나는데.. 그걸 안 해요. 그걸 안 해서 늘 나고 나서 후회하죠. '아 비타민 좀 먹어둘걸'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생기기 전에 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한다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말에도 무슨 말이 있냐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Mending the fence after losing its cattl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를 잃어버린 다음에 우리가 아무리 펜스를 고쳐봤자 소용없다는 얘기입니다. 도둑이 소를 훔쳐 간 다음에 그 외양간을 고친다는 거죠. 근데 이게 중국에는 반대의 말로 남아 있습니다. 중국에는 'Wang Yang Bu Lao'라고 해서 양을 잃어버린 다음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 (It's never too late mending the fence after losing its cattle).
중국의 전국 시대에 초나라 양왕이라고 하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정치는 부패하고 국세는 위축되고 그때 이제 장신이라고 하는 신하가 이 왕에게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 향락을 좀 멀리 하고 이렇게 막 놀지 말고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념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 큰 위기가 옵니다.'라고 했더니 그때 이제 왕이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이 확 나빠진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분노하니까 이 장신이 무서워서 옆에 나라 조나라로 망명을 갑니다. 근데 불과 다섯 달 만에 진 나라가 침공하면서 이 나라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이 왕이 뒤늦게 후회하면서 안 되겠다 싶어서 이 장신이라고 하는 신하를 다시 부릅니다. 그래서 대책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럴 때 이제 장신이 대답하기를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을 잃은 다음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습니다.'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이 양왕이 대오각성해서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우고 초나라가 마침내 위기를 벗어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성경이 먼저 하라는 건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무엇을 권고합니까? 깨어 있으라. 조심하라. 주의하라. 절제하라. 그러니까 우리가 문제를 만나지 않는 게 먼저 중요합니다.
자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우린 넘어집니다. 주의하라고 했는데 넘어집니다. 꼭 거기서 넘어집니다. 깨어 있으라고 했는데 잠듭니다. 절제하라고 했는데 실수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수하면 끝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 주셔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실수한 우리를 넘어진 우리를 짓밟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우리를 다시 불러주시고 우리 앞에 주님께서 다시 서 주십니다. 뒤돌아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넘어질지라도 어서 돌아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It's never too late 늦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수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입니까?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 소를 잃어버렸지만 지금 외양간을 고치면 다음에는 좋은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가 아 주님 이젠 끝났습니다. We're done. We're finished.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하실 때까지 결코 끝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끝내지 않으시면 절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전 경기도지사를 지내셨던 남경필 집사님 여러분 아실 텐데 이분이 요즘에 스스로를 '나는 교계 인사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난 정치인 그만뒀다. 나는 내 제일 친한 사람들 가장 가까운 분들은 목사님들이고' 교회 안에서 활동을 하고 계세요. 근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들이 마약을 해서 아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고 아들을 신고한 분도 이 분이세요. 그래서 아들이 감옥에 갔다가 이번에 나왔습니다. 근데 마약 하는 사람들 여러분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세요? 감옥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감옥 가면 마약을 못 하거든요. 감옥에 안 들어가기 위해서 별의별 걸 다 한다고 합니다. 근데 이분이 이 아드님이 감옥에 가서 예수님 만나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마약 중독에 장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이분이 다시는 이런 죄를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왔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런 젊은 사람이 마약하고 감옥 갔다 오면 끝났다라고 얘기하죠. 오늘도 우리 소망 교도소는 뭐라고 말하는 겁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소망 교도소는 그게 소망이에요. 우리가 소망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마약범으로 살고 나오면 부끄럽죠.. 사람들 손가락질하는 게 보이죠. 어디 가서 누굽니다 하면 아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외양간 고치면 소망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잘못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그 사실을 그냥 덮고 가자는 게 아니죠. 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마치 나는 그런 적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뻔뻔하게 굴자는 게 아닙니다. 베드로의 뻔뻔함이, 여러분 절대로 '내가 그런 적 없어요'의 뻔뻔함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회복되는 것이지- 이게 뭐 슬쩍 두루뭉술 이렇게 뒤로 하고 가자는 게 아닙니다. 감추는 사람, 그것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회복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다윗 보십시오. 내가 죄인입니다 하잖아요. 나단한테 '우리 이거 조용히 넘어갑시다. 내가 얼마 줄 테니까 모른 척 좀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아 주님 제가 그때 너무 피곤해서 그랬습니다.' 이런 말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회피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면 다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우리의 잘못과 우리의 과오를 직시하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들을 감히 '베드로다'라고 불러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실수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고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을 '베드로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범죄를 저질렀던 실수했던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영원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게 지워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그곳에서 다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외양간에 은혜를 품어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린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을 간절하게 붙잡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체면 사회(Shame culture)입니다. 부끄러움을 주는 사회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아우 됐어요 제가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유' 이랬을 거예요. '제가 어 저 낮이 뜨거워서 저 못 봐유' 그랬을 겁니다. '그냥 가셔유 저 다시는 못 돌아갑니다' 했을 겁니다.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외양간 고치고 있으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겁니다. '저 저 멍청한 사람 좀 봐라 저 바보 같이 뭐 하러 이제 외양간을 고치냐 뭐 하러 저 펜스를 고치냐' 싶겠지만 지나 보면 여러분 반드시 지나 보면 그때 외양간 고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그때 그 펜스를 고친 사람들이 결국은 복 받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들어가서 난공불락처럼 여겼던 여리고성을 함락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바로 뒤에 아간이 이 시날산 겉옷을 훔치고 돈 훔친 다음에 자기 장막 밑에 파묻었고 이러는 바람에 어이없게 아이성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회개하고 정비하고 돌아가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그 패배가 승리로 다시 바뀌는 겁니다. '아 이제 끝났네 우리는 이제 버림받았네 다시는 못 이겠네' 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회개하고 정비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그 죗값이 너무 커서 포기했다면 여러분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나는 이 부끄러워서 다시는 내가 이거 못하겠다. 하나님 앞에 못 가겠다' 싶어서 그냥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죗값을 치르고 그리고 돌아오기를 구하지 않습니까? 다윗을 보면 '하나님 저 진짜 죄인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 앞에서는 다시 기쁨을 회복하게 해 달라'라고 간절하게 구합니다. 탕자가 후회하면서 '야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가냐 부끄러워서 나는 돌아가지 못한다.' 제가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박사 학위를 지원할 때 이게 안되면 내가 한국 돌아가야 되는데 돌아갈 자신이 없는 거예요. 만약에 '박사 학위 안 돼서 돌아왔으면 그 말을 어떻게 하나 우리 아버지 체면은 어떻게 하나' 저는 저는 그래도 어떻게 살겠어요- 근데 저희 아버지 너무 사람들한테 '아 우리 하나가 일찍 돌아왔어요.'이 말을 어떻게 하시나 그러니까 그게 부끄러운 거죠. 우리나라 사회가 그렇습니다. 근데 저는 믿어요. 그때 제가 돌아왔어도 하나님은 은혜 주시고 저에게 길을 인도해 주셨겠죠. 뭐 박사 학위만 무슨 길입니까? 하나님한테 길이 매우 많은데 이건 우린 부끄러움 때문에 뭔가를 자꾸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살다가 부부가 안타깝지만 헤어지는 일들이 왜 없습니까? 부끄러워서 교회도 못 나오고 사람들도 못 나오고 그러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다 아시고 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래서 남을 자꾸 부끄럽게 여기면서 나의 길을 나 스스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소 읽고 외양간 고치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은 그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다만 우리는 왜 소를 잃어버렸는지는 생각해 봐야 돼요. 내가 왜 애초에 소를 잃어버렸나 아가는 욕심 때문에 잃어버린 겁니다. 욕심이 그런 일을 일어나게 합니다. 다윗은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없는 자유와 쾌락을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살아보면 추스를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강한 기업이라면 큰 실패를 당해도 우리가 잘못 판단한 것이 우리가 실수한 것이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생각하고 위기를 벗어나는 로드맵을 반드시 만들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똑같은 문제로 계속 넘어지는 것은 계속 소를 계속 잃어버리는 것은 그건 실수가 아니라 나태함이고 무책임한 자세이며 비윤리적인 자세입니다. 제가 군에 늦게 제대하고 학교에 돌아가서 첫여름에 이스라엘에서 발굴을 하고 혼자서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가던 유럽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2주 정도 유럽에 있었는데 그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 제대로 없던 시절이죠. 맨땅에 헤딩하면서 그냥 혼자서 막 책 보면서 막 다니고 그러던 때입니다. 근데 제가 처음 도착한 곳이 런던이었는데 런던의 호스텔에서 싼데 묵다 보니까 제가 가방을 잘 관리를 했는데도 누가 몰래 제 여권이랑 돈을 훔쳐 갔어요. 그때 뭐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더라고요. 뭐 돈이 다행히 이제 좀 분산되어 있어서 다 잃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여권도 잃어버렸으니까 근데 저는 지금 기억도 안 나요. 근데 어찌어찌 제가 대사관에 찾아가서 여권을 다시 발급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프랑스로 내려가고 이탈리아로 내려가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다음부턴 해외 어딜 가면 여권 하나는 제가 제대로 챙깁니다. 여권 하나는 늘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챙깁니다. 여러분 우리 실수합니다. 소를 잃어버려요. 그러나 다시는 잃어버리면 안 되죠. 맨날 똑같이 여권 잃어버리고 다니면 누가 저랑 같이 해외를 가겠습니까? 우리 집사님들이 저랑 가겠습니까? 우리 목사님은 해외만 나가면 여권 잃어버린다.

말씀을 맺습니다. It's never too late 늦은 일은 없습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주님께로 돌아오면 해결됩니다. 네 소망교도소는 그거예요. 주님께로 돌아오면 it's never too late 절대로 늦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 화해할 수 있습니다. 깨어진 관계 늦지 않았습니다. 화해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 늦지 않았습니다.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로 나아가면 죽음 앞에서도 죽음까지 간 삶이라 할지라도 주님 앞에 다시 돌아가시면 늦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교회에 임종 세례를 받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다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면서 우리의 실패와 실수와 넘어짐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의 은혜로 이 새벽에 나와서 다시 주님 앞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넘어집니다. 우린 실수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회복의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의 사랑 앞에 너무 늦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특별히 우리 소망교도소에 갇혀 있는 수많은 범죄자들. 세상은 낙인찍어 버리지만 하나님 우리 주님 앞에서 결코 늦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회복하게 하시고 좋은 사회인으로서, 시민으로서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명성교회가 그 일을 잘 지원하게 하시고 또 끝까지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교회 방문해 주신 우리 감리교 목사님 주님의 귀한 종들 위에 주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모든 한국의 일정 위에 은혜 내려 주시오며 또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도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선교사님들을 눈동자처럼 지켜 보호하여 주시오며 우리 사랑하시는 원로 목사님 신원의 강건함을 주시옵고 많은 일들 가운데 주의 복음이 빛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지난 주일날 지난주 임직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임직식 후에도 새벽에 자리를 지키는 우리 귀한 권사님들과 안수집사님들 하나님 기억하여 주시오며 그 헌신이 그 사랑이 식지 않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기도하신 집사님의 기도를 흠양하여 주셔서 하나님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고 그의 삶 가운데도 좋은 곳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오늘도 복된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감사 영광 주님께 올려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