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3. 00:53ㆍ성경읽기/시편(2023.01.18 ~ )
1 여호와여 나의 대적(foes)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Many are saying of me, "God will not deliver him." (NIV)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I lie down and sleep; I wake again, becuase the LORD sustains me. (NIV)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From the LORD comes deliverance. May your blessing be on your people. (NIV)
(시3:1-8)
이 몸,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한숨 푹 자고 일어납니다.
푹 쉬었다가 씩씩하게 일어나, 벌 떼처럼 달려드는 적들을 두려움 없이 맞습니다.
... 참된 도움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메시지 성경, 시편 3편 중)
묵상(이라 하고 반추하는 시간):
오늘 사모님이신 친구를 만났다. 나도 학업으로 바쁘고 친구도 남편을 따라 사역을 섬기다 5,6년? 만에 보았다.
간간히 카톡은 했지만 나도 연락을 먼저 선뜻 하지를 못해서... (친구끼리도 이유가 없으면 굉장히 고민하다가 보낸다. 친구 시간 뺏는거 같아서..+a)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개인적인 심리문제에 대해서도 간단히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이야기 이야기의 결론은, 기도하자.
그리고 다시금 회개 및 실망(==;;)을 하게 된다. 하나님, 기도를 절실히 못해 죄송해요/ 그런데 기도말고 실질적인 해답 좀 주세요. 역시 저는 노답이죠..
(하나님도 어쩌라는 거여 하실지도 모른다.)
우리 교회에서 토요일 새벽예배 (새벽을깨우는가정예배?!)때, 사무엘하 강해(?!)를 하시는데,
오늘 본문을 읽는데 당시 말씀의 상황들이 어렴풋이 기억이난다. (삼하15~17장)
표제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시'이다.
두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1) 아들의 무리들을 악인으로 비유되어지는게 너무 마음이 아팠고
2) 이런 슬프고 원통하고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는 누워 자고 깨어났고, 이를 하나님 덕분임을 찬양한다.
봉사를 마치고 담당 전도사님하고 잠시 설 이야기를 나누는데, 큰 집의 큰 아들로 친가는 여전히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신학교를 간다 했을때, 아버지께서 엄청 막으셨다고 한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앞뒤 문맥을 자르고 간결하게 말하는 부분이 있어 오해의 여지가 있을수 있지만-
우리 가까이 '악인'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떠한 관계로든... 아들에게 쫓겨다니는 다윗, 기도의 확신이 없는 나 자신, 신학을 반대하는 아버지...
거기에는 우리가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참 단순한 답변을 내놓게 된다.
그렇다고 이게 우리의 죄의 행동들을 합리화 하는건 아니다. 로마서를 읽으면 우리가 성령으로 새사람이 된 자로, 성화의 삶- 즉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나오게 된다 말한다. (로마서5~8장...?이었을거다.)
선/악의 기준은... 주님이 즐거워하시는가. 라고 알려주셨다. 그게 우리의 기준이다. (또 여기에 사람의 해석이 가미될 수 있지만, 기도하며...기도...하아...)
시편은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다윗에 대해 박수박수 친다.
'모든 상황속에서~주를 찬양할지라~'의 주인공이 다윗이다.
어릴때 제자학교인가? 대학부인가? 시편을 언제 썼는지 알려주시는데-
광야에서, 가장 힘든 상황에서 찬양한 것이 시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때의 앎은 정말.. 다윗이 대단하다.. 나는 당 떨어져서 몸이 떨리면 기도보다는 초코우유부터 사려가는데... 다윗은 항상 기도하고 움직이고-
나는 돈이 없어 굶었을때 주님.. 배거파유 (엉엉) 할때, 다윗은 목숨이 쫓기는 상황에서도 울면서(?) 찬양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왜 사도행전 13장22절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1/22 저녁말씀이었당)
마무리...
나는 여전히 기도.. 친구가 기도하라고 손잡고 이야기했는데... 기도... 휴우...
그래서 나는 찬양으로 대신(?) 한다. 내가 기도가... 정말 1도 하고 싶지 않을때-
찬양이 '가락있는 기도'라는 말이 얼마나 나에게 위안이 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의 기도가 위선적이라 느껴질때에도, 찬양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은, '마음의 예배'이다.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주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 드리네 주님을 향한
...
주님께 드릴 맘의 예배
주님을 위한 주님을 향한 노래
중심잃은 예배 내려놓고
이제 나 돌아와 주님만 예배해요
내가 나의 신앙에 대해 처음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
앞에서 찬양을 부를때 형식적인/계산적인 동작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너무 위선적인 내 자신이 불편하고 이렇게 찬양을 하는게 맞을까
나도 주변에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왜 나는 눈물이 안 나올까.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쿵 온것은,
찬양의 열기가 아닌, 나의 감정이 아닌, 눈물의 양이 아닌.
내 중심을 드린 예배인가.
내 자신이 워낙 감정적인 캐릭터라.. 이 찬양을 생각하며 감정이 아닌 중심을 드리자 되새긴다.
다윗이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찬양을 기도를 드릴 수 있던 것은
어느 상황에서든 중심이 하나님을 향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성경읽기: 욥기 1~8장, 시편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