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7. 01:46ㆍ예배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마가복음(막) 5: 25~34 (아멘)

여러분들 낄끼빠빠라는 단어 아세요? 낄 때 잘 끼고 빠져야 할 때 잘 빠져야 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낄 때 잘 끼고 빠질 때 잘 빠지죠. 사전을 찾아보니까 분위기 파악을 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지난 주일(1/8)에 '얕은 곳에서 누리는 깊음'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 서두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기죽지 말아야 된다고. 우리의 얕음을 사람 앞으로 들고 가면 우리는 부끄러워지고 숨고 싶어지고 기가 죽죠. 그러나 우리의 얕음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갈 때에 우리의 얕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도구가 되고 우리의 얕음을 통해서도 역사하신 하나님의 깊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에 위로와 힘을 얻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죠. 사람 앞에서 우리가 주눅들 필요가 있죠. 눈치 볼 줄 알아야 되고 상황 파악할 줄 알아야 됩니다. 기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사회생활 잘하는 것이고 그래야 낄끼빠빠도 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낄끼빠빠의 모범 답안 같은 그런 본문입니다. 일단 오늘 본문 자체가 다른 사건 중간에 교묘하게 끼어들었다가 교묘하게 빠져 있는 사건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총 세 가지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정말 유명한 세 가지 사건이 기록돼 있는데-
첫 번째 사건은 작년(2022) 단기 선교 파송예배 때, 제가 이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 밤중에 갑자기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저기로 건너가자 하시고 건너가셔서 거라사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 사이에 풍랑이 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고생 끝에 가서 딱 한 사람 전도하고 구원시키고 고쳐주시고 나오셨습니다. 무려 돼지 2천 마리를 희생시켜 가면서 거라사 지방에 군대 귀신 걸린 사람을 낫게 하시고 그렇게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신 사건이 마가복음 5장에 나옵니다.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면서 예수님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뭘까요? 달리다굼입니다. (청년부 중창단 이름과 같지요.)
그리고 세 번째가 오늘 본문입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이야기.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옷자락에 집중을 하죠. 그래서 우리가 특별히 우리 교회는 '주님의 옷자락'이라는 찬양을 참 많이 좋아하고 또 우리 원로 목사님께서 쓰신 가사니까 거기에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이 이 세 번째 사건(혈루증 걸린 여인)인데, 두 번째 사건 사이에 교묘하게 끼었다가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사건, 야이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마가복음 5장 21절에서 24절 내용을 보시면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의 앞에 엎드려서 제 딸을 고쳐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마가복음 5장 21절에서 24절까지 내용입니다. 고쳐주신 내용은 35절에서 43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소녀가 나중에 살아나요.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막 5:21~24, 35~43)
그러니까 그 사이에 혈루증 걸린 여인이 교묘하게 끼었다가 빠진 이 사건이 개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 자체만 해도 완전 낄끼빠빠했는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주인공, 혈루증 걸린 여인도 완전 낄끼빠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제자들도 모르게. 어떻게 왔다 갔는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사라집니다. 진짜 교묘하게 끼었다가 진짜 교묘하게 빠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실제로 이 상황을 한번, 있는 그대로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 곁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강대상에서 내려오셔서 성도들 자리로 가시며) 따라오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와 더불어서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뿌듯했을 것입니다. 많은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잖아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검증되지 않은 분이셨거든요. 반대하는 분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볼 때 회당장 정도면 되게 높은 급인데, 그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길 한번 잡고 싶고. 눈길 한번 교환하고 싶고, 말 한 번 섞고 싶어서 이렇게 따라다니고 셀카 찍어요~ 그러고 있으니까 얼마나 이게 감격스러운 상황입니까.
그런 좋은 분위기 가운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다가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방금 누가 저한테 손대셨어요?' 당황스럽죠. 제자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계속 물으십니다. '누가 내 몸에 손댔어?' 제자들이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당신 곁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가 지키고 있는데 누가 주님 몸에 손을 댑니까? 그리고 이렇게 많은 무리가 에워싸고 있는데 손을 댈 수도 있지 어떻게 찾습니까?!' 제자들이 당황하든 말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면서 살피셨습니다. '아니야 분명히 누군가가 내 몸에 손을 댔어.' 그리고 계속 살피셨습니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댔니?'
(이때 두건을 쓴 여인이 달려 나온다.) 그녀는 혈루증 걸린 여인이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손을 대고 나음을 입었고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갔습니다. 여러분, 혈루증이 무슨 병입니까? 혈루증과 혈우병은 다릅니다.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부족한 병입니다. 그래서 코피가 나거나 상처가 나거나 하면 혈액이 잘 안 굳는 게 혈우병입니다. 근데 혈루증은 여인에게 있는 병인데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하혈을 하는 병입니다. 건강한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생리 현상으로 하혈을 합니다. 그래서 생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생리라고도 하고 매달 지나가는 그런 현상이기 때문에 달 월, 지날 경 월경이라고도 합니다. 근데 혈루증 걸린 여인은 시도 때도 없이 하혈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병이 그 당시에는 부정한 병으로,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무리 가운데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12년 동안을 아팠잖아요. 그 아픈 여인이 무리를 해 집고 예수님께 나아갔다는 것 자체가 힘들죠. 더러운 사람이잖아요. 이 자리에 있는 게 들키면 안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다 예수님 가까이 나아가고 싶은데- 이 아픈 사람, 더러운 사람에게 누가 길을 터줍니까? 그러나 그녀는 참 간절했습니다. 꾸역꾸역 예수님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고 그 옷에 손을 대었고 나음을 입었고 그리고. 조용히 빠졌습니다.
문제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이 여인이 아팠음을. 예수님께 다가갔음을. 손을 대었음을. 나음을 입었음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얘기잖아요. 솔직히 여러분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 없잖아요. 심지어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무리가 에워싸 미는데 손대고 간 사람을 찾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 수많은 무리 가운데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그래서 모든 재산을 탕진한,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계속 죄인으로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음을. 그 아프고 더러운 몸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을 해치고 자기에게 다가왔음을. 그리고 손대었음을 나았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녀를 다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숨어버린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한 거야 그러니까 평안히 가라. 너 이제 병 나왔으니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 이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왔던 길로 나간다.) 참 훈훈한 이야기고 은혜로운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을 것이고, 지금 여러분들 반응이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그때 상황만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참 은혜로운 이야기고 참 감사한 이야기고 아름다운 결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대할 때 의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 여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 병을 고쳐주셨는데, 능력이 빠져나갔는데, 근데 왜 그녀를 다시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하셨을까? 12년 동안 부정하게 살아왔던 그녀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숨어버린 그녀였습니다. 그런 그녀를 왜 다시 무리 가운데 부르셨을까? 예수님이 모든 걸 아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녀의 마음도 아셨을 텐데 부끄러워하고 얕은 마음, 숨고 싶어 하는 마음, 부정한 마음 다 아셨을 텐데, 대체 왜 그러셨을까? 왜 불편하게 하셨을까? 왜 찾으셨을까? 다들 아시겠지만 그녀는 잘 숨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죠. 그렇지만 숨어있는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녀의 성향-성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상황 자체는 숨어있어야지 드러나지 않아야지 맞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혈루증에서 이제 막 고침 받은 여인 역시 마찬가지죠. 그녀는, 사람 앞에 드러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잘 나타났고. 잘 손댔고. 아무도 모르게 잘 빠졌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나서면 안 되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나서도 되는 그런 위치와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좀 급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회당장 야이로가 그런 사람이죠. 오늘 본문 그리고 25절부터 34절까지 읽었는데, 마가복음 5장 22절 말씀입니다.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아멘)
회당장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니까 그냥 나타나는 거예요.
그 발 앞에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에요. 그 발 앞에 엎드려요. 그리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죠. 제 딸이 아픈데 좀 고쳐주세요. 언제든지 당당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 정도 급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아멘)
그녀는 자기 주제와 자기 위치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나선 게 아니라 끼어- 낄끼빠빠인데 끼어서 갔고, 앞에 나선 게 아니라 뒤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에 손 한 번 대고 사라졌습니다.
그럼 그녀를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사람들 앞에 세우셨을까요. 대체 왜? 왜 그런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셨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시려고 이랬던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해 주려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녀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고 진짜 진짜 옷자락에 손을 대고 간 사람이 한둘이었겠습니까? 근데 그녀가 병 나았던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지금 그녀의 지금 이 상황, 지금 마음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녀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멘)
되게 웃기잖아요. 지금 되게 불편하게 해 놓고 너 평안히 가라 하고 계십니다. 모든 마음을 다 알고 계시는데,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는데, 너 평안히 가라 말씀하셨던 것은. 그녀가 지금 평안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가 왜 평안하지 못했을까요? 12년 동안 앓던 그 저주 같은 병이 지금 순식간에 나았는데 왜 마음이 평안하지 못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것을 율법의 정결법과 결부시키려고 합니다. 정결법에 의하면 혈루증 정결합니까 부정합니까? 부정합니다. 격리 조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레위기 15장을 읽어보시면 그녀가 베고 잤던 그런 베개나 이불도 혹시 손만 대도 그 사람도 부정해져 버리는 게 혈루증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
19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레15:2, 19)
정결법에 의하면 부정한 것이 깨끗한 것에 닿으면 깨끗해집니까 아니면 부정한 것 때문에 깨끗한 것마저도 더러워집니까? 더러운 것 때문에 깨끗한 것도 부정해지는 게 정결법입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여러분 건강한 사람이 코로나 걸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건강한 사람 때문에 코로나 걸린 사람이 낫습니까 아니면 코로나 걸린 사람 때문에 건강한 사람도 그 병에 걸립니까? 더러운 것 때문에 깨끗하던 것도 같이 더러워지는 게 정결법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자기가 부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 그러나 낫고자 하는 마음과 그 간절함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즉시 나았습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아멘)
이 여인이 깨달았어요. 자기가 나은 것을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이 여인, 12년을 그 상태로 산 거예요. 자기 상태를 모르겠냐고요. 12년 동안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혔던 그 상태가 그날 바로 그 순간에 없어졌다니까요.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저는 단순히 기쁘다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기뻤겠죠. 감사했겠죠. 컨디션 좋았겠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에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 불안함이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자기가 손을 댔으니까- 깨끗한 예수님은 더러워졌습니다. 12년을 앓던 병이 나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결한 사람을 더럽혔다는 이 사실은, 평생 그녀를 죄책감을 갖게 했고. 죄인으로 살게 했고. 평생 지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녀를 부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한 거야. 그러니까 불편한 마음 갖고 가지 말고 편안하게 가. 12년 동안 고생했어. 이제는 그 병에서 놓여서 이제 남은 평생 건강하게 살아' 축복해 주셨습니다.
12년을 혈루증으로 살았지만 은혜의 때가 이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올해 연말 은퇴를 앞두고 계십니다. 그런데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 저도 어렵지만 저희 아버지 교회 같이 목회하시는 부목사님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정말 어려워하십니다. 특히 이럴 때 어려워하십니다. '김 목사님 내 방에 잠시 오세요.' 사실은 뭐 음료수가 생겨가지고 그냥 가지러 오라고 하시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쪼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께 가서 컨펌받으려고 하는 것도 어려워하셨습니다. 목사님 방에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어보니까 벌벌 떠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저희 아버지 집무실에 들어가는 거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 집무실에 들어가서, 제 마음대로 아버지 방에 있는 음료수 마음대로 꺼내 먹고요. 좀 두꺼운 책 마음에 드는 책 있으면 조용히 낄끼빠빠 빼가지고 서울로 가져와서 라면 받침대로 씁니다.
저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희 아버지, 그 책 없어진 거 10년이 지났지만 모르고 계십니다.(ㅋㅋㅋ) 낄끼빠빠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저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을 제가 귀찮아해서 그렇지, 제가 들어가는 거 항상 아버지 좋아하십니다.
'아버지, 저 포항 왔습니다. 방에 잠시 들러도 돼요? 언제 괜찮으세요?'
'아무 때나 상관없다. 아들이 온다는데.'
담임 목사님이 지난주에 말씀하실 때,
원로 목사님이 '어데로? 너 어데로 가고 있나?' (=너 지금 어디 있냐라는 물음이죠.)
'저 교회입니다. 저 도서관입니다.'
'그래 그래 그래'
저희 아버지, '아버지 언제 가면 돼요?'
'아무 때나 상관없다! 네가 온다는데.'
예수님께서는 고침 받은 여인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딸아.'
솔직히 12년의 혈루증을 앓았으면 상식적으로 예수님보다 더 나이는 많았겠죠.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주님 저 주님께 언제 갔다가 언제 빠지면 돼요? 옷 한 번 손대고 가도 괜찮죠?'
'아무 상관없다. 내 딸인데 내 아들인데 언제든지 와라'
우리는 모두 주님의 아들 딸들인 줄 믿습니다.
은혜의 때가 언제에 이르는 것이 적절합니까? 언제 끼었다가 언제 빠지는 것이 맞습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가기에 가장 적절한 낄끼빠빠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이와 상관없이 형편에 상관없이 우리 부정하고 깨끗하고 상관없이
언제든지 가면 그때가, 은혜의 때가 우리에게 임하는 시간인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찬양하며 우리를 아들 딸로 불러주신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나의 하나님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_박우정
살아계신 하나님,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 나 여전히 부족함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의 옷자락으로 우리를 덮어주시고 주님의 그 따뜻한 말씀으로, 괜찮아 아들아 딸아 불러주실 줄 믿고 우리가 나왔사오니 주여, 이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의 때인 줄 믿습니다.
주님, 오늘 은혜받아도 내일 넘어지는 우리들인데 올 한 해 은혜의 때가 수시로 매일매일 이르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낄끼빠빠 잘해야 되겠지만 주님 앞에 낄끼빠빠 하는 적절한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용기 내게 하여 주시고 염치없더라도 늘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문 두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주변에 아픈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연약해서 제가 부족해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요. 우리 가족들이 많이 아프고요. 우리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온전히 낫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내어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우리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과 함께 건강해지고 은혜의 때가 이르는 2023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1월 둘째 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님 시시때때로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올해가 이제 마쳐갈 때에 어떠했냐 고백하면 '필요한 은혜를 계속 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올해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붙들어 주실줄 믿사오며 사랑하고 축복하오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f: NEWSONG J. (2023.01.15) 명성교회 NEWSONG J 청년부 말씀 [23.01.14] 황대석 목사[영상]. Youtube. https://youtu.be/xfgKNnI8-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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