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6. 10:56ㆍ독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책을 읽으며 어렸던 나의 고민이 생각났다.
초등학생부터 찬양팀과 성가대를 통해 찬양의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많은 언니 오빠들의 모습들을 보았다. 그 찬양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찬양하는 거구나 배우며 기뻤고, 시간이 지나 익숙함이 되었다. 어느 때처럼 수련회 부흥회 시간, 스스로에게 물음이 생겼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 찬양을 하고 있는 걸까?'
두려움에 선생님께 도움을 구했지만 이런 '은혜 없는' 질문에 평가받을까 겁이 났고, 돌려 말하기의 결론은 '쉼'이라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절, 교회에서 아이들끼리 싸움이 있었다. 저녁 예배를 드리고 가는 중에 성전 문 앞에서 아이의 부모님이 상대 아이를 정죄 하기 시작하였다. 저녁예배 직후였지만 그 누구도 말리지 않으셨다. 정죄받는 아이는 홀로 교회를 다니는 친구였고 정죄하던 부모님의 아이도 내 친구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만 더 지혜롭게 보듬어 줄수 없었을까...싶다. 그렇게 교회도 세상과 다름이 없음을 느꼈고-
이후 교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도망을 쳤다. 그러나 사랑이신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 축도 시간은 나오게 만드는 닻이 되었다.
20대, 집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며 나는 '예수님 이제 안 믿을 거예요.' 라는 다짐을 했다. 긴 시간 동안의 고통의 고민들은 결국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시작된 물음이었다.
만약 이렇게 끝났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직후 기독교 동아리 포스터를 보고 '여기까지는 가보자'는 발걸음이 다시금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들을 허락해 주었다.
오늘은 책 '고통의 문제'를 읽기 전 이종태 교수님의 짧은 소개 영상을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다마스커스TV를 보다 보면 많이 언급되는 '신정론'에 대한 개념을 다시 이해하고, 책을 하마터면 '위로'책으로 오해할 뻔했던 터라 영상으로 설명해 주셔서 감사했다.
루이스는 '고통이 왜 있지?'라는 질문보다 선행되어야 할 질문은 ''기독교'라는 것이 왜 있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인간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연을 관찰하며 내린 결론이 아닌 '계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론 p22부터 종교에 공통점 3가지와 기독교만이 가지는 1가지를 설명하는데,
'우주는 파괴적이고 무자비하고 불공평한 반면, 도덕은 그에 반대되는 특질을 우리에게 부과합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를 동일시하겠다는 것은...(p31)'
1) '우주' 즉, 경외심과 전능함 2) '도덕'은 선-악, 기준 3)'동일시'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능함과 이분법으로 나눠진 선악의 기준을 모두 품는 것,
즉 전능한 신이며 선/악을 모두 다스리는 존재로 이해하였다.
이 가운데 마지막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4번째 '역사적 사건, 성육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든 바탕에는 '믿음'이 있다.
'물리적인 두려움이 공포감과 경외감으로 바뀌는 것은 완전히 도약적인 변화로서, 이때 인간이 깨닫게 되는 그 무언가는 위험을 인식하는 경우와는 달리 물리적인 사실에서 제공받는 것도 아니고 그 사실들에 근거한 논리적인 추론에서 제공받는 것도 아닙니다.(p27)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의 문제'는 주님을 믿음으로 고민하는 그 발버둥에서 시작되었다. 여전히 비슷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함을 또한 고백한다.
앞으로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우리에게 설명을 할지 두근거린다.
ref. 2023.05.16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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